예전에 에스키모 생활의 중심에는 카리부가 있었고 카리부가 전부였어. 에스키모는 철따라 키리부를 뒤쫓았지. 사람들은 카리부와 함께 하면서 정신적인 충만을 얻었어. 거기에는 완성된 생활이 있었던 거야. 그러나 언제부터 서양 문명과 함께 화폐 경제가 들어와 사람과 카리부의 관계가 약해지고, 사람들은 정신적인 충족을 점차 새로운 가치관에서 찾게 되었지. 하지만 그 새로운 가치관 이란 것이 카리부하고는 달라서 아무리 쫓아도 붙잡을 수 없는 것이었고, 사람들은 완성된 생활에서 점점 멀어져가 버렸지.
바깥세상과 관계가 끊겨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중요한 것이였어
비록 어린 아이들이지만 한 생명을 끝장내고 손으로 직접 살점을 만지명서 뭔가를 느꼈을 것이다. 우리를 비롯한 모든 생명이 다른 생명에 의존하고 있다는것, 그 고기를 입안에 넣음으로써 그 카리부의 생명을 자기가 잇게 된다는 것.
변해가는 생활 속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 자기들이 누구인지를 항상 가르쳐주는 것. 말하자면 고래잡이는 에스키모 사람들에게 그런 것이리라.
어이 시간아 어릴적의 너를 다시한번 만나고싶다
역시 묘한거야 사람의마음이란 아주자잘한 일상에 좌우되면서도 새 등산화나 봄기운에 이렇게풍족해질수있다니
사람의마음은 깊고
또이상할만큼 얕다
사람은 그 얕음으로 살아갈수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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